2024년 10월 20일 감사3줄 노트 쓰기
2024년 10월 20일 감사3줄 노트 쓰기
오전 6시 05분
뭔가를 계속 말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정말 그것을 원하는 건 아니다. 그러면 자신과 진솔한 대화를 나눠 볼때다. 행동의 바탕에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진실한 동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보상은 희생의 반대편에 있다” 반응(에너지 희생) 은 늘 보상(자원의 집합)에 선행한다.
“러너스 하이(격렬한 운동후에 느끼는 황홀감)은 오직 힘들게 일한 다음에만 온다. 보상은 에너지를 소진한 후에 만 온다. 보상은 열망을 충족시키는 결과물이다. 이는 자기 조절을 효용없이 만들어 버리는 데, 열망을 억제하면 열망이 해소 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혹에 저항하는 것은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저 열망을 무시할 뿐이다. 지나간 열망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낼 뿐이다. 자기 조절은 열망을 충족시키기 보다는 열망을 그냥 방출해버리게 한다.
7시 24분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정독하고, 다음 읽을 책은 요즘 가장 핫한 작가,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 한강 작가의 주요 책들을 몇권 주문했는데 어제 도착했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희랍어 시간, 흰 등 몇권을 더 주문하였다. 좋은 책 기대된다.
8시 34분
양비론이란?
서로 충돌하는 두 의견이 모두 틀렸다고 주장하는 이론을 말한다. 양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흔히 “모두 까기 인형”이라 부른다. 상당히 많은 대립되는 주장으로 나름의 근거와 타당성을 지니고 있고,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들이 많아 한쪽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그다지 정확하지 않은 접근일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세 번째 나온 이론이 “양비론”이 된다. 다만 양비론에서 상황에 따라 좀 다른데 이름 그대로 끝까지 양쪽 모두에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경우가 있는 한편, 필요에 따라서는 또는 둘중 하나를 선택하긴 해야할 경우엔 “좀 더 완벽한 쪽”보다는 “좀 더 오류가 없는 쪽”을 기준으로 해서 변호를 해주거나 그쪽의 비판을 덜하는 경우도 있다. 양비론과는 반대로 서로 충돌하는 두 의견이 모두 옳다고 주장하는 이론은 “양시론”이라고 부른다.
9시 02분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온다. 많이 온다. 종일 비가와서 운동도 못하고 종일 책만 읽고 있다.
귀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귀에서 소리 울림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확언을 한다. 나는 건강하다. 몸의 모든 기능이 무한한 지성에 의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에 감사합니다.
11시01분
조금 전에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정독했다.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았으면서도 나는 알지 못했다. 물론 5.18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자세하게는 알지못했다.
80년 5월 나는 그당시에 무엇을하고 있었을까?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덮고 난 후,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소설은 1980년 5월 광주를 배경으로,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영혼들과 그 이후를 살아내야 했던 이들의 고통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고, 인간이 인간에게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마주하며 형언할 수 없는 거북함과 불편함에 짓눌렸다. 그러나 나는 이 고통스러운 독서를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로서의 부채감이자, 이제라도 그날의 진실을 온몸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문득 1980년 5월의 나를 떠올려 본다. 당시 나의 나이는 열일곱 살이었다. 나는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었다. 일과가 끝나면 내가 좋아하는 태권도 도장에 나가 수련을 하며 땀을 흘렸고, 그것이 내 세상의 전부였다. 소설 속 주인공 동호와 비슷한 나이였음에도, 나는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던 참혹한 비극을 알지 못했다. 내가 도복을 입고 발차기를 하며 평온한 일상을 보낼 때,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라는 이름의 폭력 앞에 무고한 생명들이 낙엽처럼 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극명한 대비가 주는 괴리감은 뒤늦은 자각과 함께 깊은 회한으로 다가왔다.
한강 작가는 특유의 섬세하고 시적인 산문으로 그날의 비극을 기록한다. 죽은 자의 영혼이 자신의 시신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훼손된 육체에 깃든 고통의 흔적들은 단순한 서술을 넘어 독자의 감각을 직접적으로 파고든다. 특히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라는 문장은 역사의 비극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영원히 가두는지를 처절하게 보여주었다. 작가는 비극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상처 입은 영혼들을 하나하나 보듬으며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운다.
이 책은 나에게 단순한 독서 이상의 경험을 선사했다. 그것은 망각이라는 편리한 도피처를 거부하고, 아픈 역사의 상처를 직시하는 용기에 관한 것이었다. 이제 나는 다음 여정을 준비한다. 제주 4.3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를 비롯하여, 작가가 던진 화두를 따라 우리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려 한다. 고통스럽지만 기억해야 하는 것, 그것이 죽은 자들을 기리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인간다운 삶을 향한 첫걸음임을 깨닫는다. 좋은 책을 통해 내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깊은 감사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