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8일 감사3줄 노트

 2025년 6월 18일 감사3줄 노트 


  1. 오늘 잘한 일은

지금 시간이 6시 20분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주변 정리는 했고, 샤워를 해야 하는 데 아직도 발 바닥에 통증이 조금 남아있어 거동하기가 불편하다, 오후에는 통일이와 같이 운동할 수 있기를 바라며 시각화를 한다.

보편적 정신은 정적이다. 정적인 정신이며 평행상태의 원료이다. 이는 우리의 사고력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생각은 정신의 역동적 단계다. 능력은 능력을 의식하는가에 좌우된며,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잃어버리게 되고 능력을 의식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능력의 사용은 주의력에 달려있다. 얼마나 집중하는가에 따라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지는 데, 지식은 능력의 또다른 이름이다. 주의력은 천재를 구분짓는 특성이라고 여겨져 왔고, 집중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관심이 클수록 주의력이 커진다. 관심이 많을수록 반응과 행동이 커지고,  반대로 주의력을 기울이면 오래지 않아 당신은 관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작용과 반작용의 관계처럼 이 주의력으로 더 많은 관심을 끌 것이고, 이 관심은 더 큰 주의력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이 관계성을 인지하고 연습한다면 목표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오늘은 닐 도널드 월쉬의 '신과 나눈 대화(Conversations With God)'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신과 직접 대화를 나누었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핵심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신의 개념을 뒤집고 인간과 신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데 있습니다.


다음은 닐 도널드 월쉬의 영적 텍스트를 평론적·철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요약한 내용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심오한 지혜는 언제나 칠흑 같은 어둠의 심연에서 잉태되어 왔습니다.

영혼의 가장 깊은 겨울을 지나던 닐 도널드 월시(Neale Donald Walsch)가 신을 향해 던진 분노의 탄식은, 역설적이게도 인류의 해묵은 영적 갈증을 해갈하는 샘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저작 [신과 나눈 대화]는 단순히 한 개인의 신비체험을 기록한 서적을 넘어, 서구의 기독교적 이분법과 동양의 불이론적 우주관을 절묘하게 융합한 철학적 마스터피스입니다. 본 글에서는 이 위대한 대화록의 핵심 사상을 동서양의 고전 문학 및 철학적 유산과 결부하여 깊이 있게 탐색하고자 합니다.


제1장: 존재의 시원과 신성한 합일

[신과 나눈 대화] 가 인류에게 던지는 첫 번째 가르침은 존재의 본질이 곧 ‘하나(Oneness)’라는 선언이다. 책 속에서 신은 자신을 인간과 분리된 초월적 심판자가 아닌, 모든 만물에 깃든 에너지가 집약된 우주 그 자체로 규정한다. 이는 기독교적 전통의 절대적 타자로서의 신관을 전복시키고, 인간 내면에 신성이 내재해 있다는 내재신론적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이러한 사상은 동양 고전 철학의 정수인 ‘장자’의 ‘제물론’과 깊은 궤를 같이한다. 

장자는 만물이 하나의 거대한 기로 연결되어 있으며, 피아의 구분이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다고 역설했다. 닐 도널드 월쉬가 묘사하는 신과 인간과의 관계는 장자가 말한 “만물제동”의 세계관과 닿아 있다. 신은 책 속에서 인간을 ‘바다에서 떨어져 나온 한 방울의 물’로 비유한다. 물방울은 자신을 바다와 다른 존재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 성분과 본질은 완벽한 바다이다. 물방울이 곧 바다이듯, 인간은 곧 신의 물질적 현현이다.

“ 하늘과 땅은 나와 함께 생겨났고, 만물은 나와 하나이다”

또한 이 개념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속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겪는 기나긴 귀향길의 여정과도 닮아있다.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를 찾아 수많은 괴물과 유혹을 물리치며 나아가는 여정은, 다름 아닌 인간의 영혼이 분리라는 환상을 깨뜨리고 자신의 본향인 ‘신성한 합일’로 돌아가는 고독하고도 필연적인 영적 오디세이를 상징한다. 

우리가 타인을 해치는 행위는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타인이란 분리된 외부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나이기 때문이다.


제2장: 망각의 강을 건너 영혼의 기억을 깨우다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화 속 신은 단호하게 답한다. 인생은 무언가를 배우는 학교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기억해내는 과정이라고 말이다. 영혼은 육체를 입기 전 이미 우주의 모든진리와 자신의 신성을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물리적 세계라는 거친 밀도의 공간으로 들어오면서 영혼은 의도적인 ‘망각’을 선택한다.

이는 플라톤(Platon)이 [국가(Republic)]  제10권 ‘에르의 신화’에서 묘사한 ‘레테(Lethe)의 ‘강’을 연상시킨다. 영혼은 이승으로 태어나기 전, 모든 기억을 지우는 레테의 강물을 마셔야만 한다. 플라톤은 철학적 탐구와 배움의 진리를 습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영혼이 이전에 알고 있었던 이데아(Idea)의 세계를 다시 떠올리는 ‘상상(Anamnesis, 상기)’의 과정으로 보았다. 닐 도널드 월쉬의 메시지는 플라톤의 상기설을 현대적 영성으로 고스란히 부활시킨다.

따라서 인간의 영혼이 이 지구라는 시공간에 존재하는 이유는 결핍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다. 개념적으로만 존재하던 ‘빛’이라는 온전한 상태를, ‘어둠’이라는 상대적 배경 속에서 직접 다채롭게 경험하고 선언하기 위함이다. 삶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창조되는 것이다.


제3장: 우주의 이원성과 감정의 두 축 — 두려움과 사랑

텍스트의 윤리적, 심리적 뼈대를 이루는 것은 인간의 감정을 지배하는 두 개의 절대적인 축, 곧 ‘두려움(Fear)’과 ‘사랑(Love)’의 대립이다. 신은 인간이 겪는 모든 번민과 사회적 해악(전쟁, 탐욕, 증오)의 본질을 파고들면 그곳엔 언제나 상실과 결핍에 대한 근원적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반대로 모든 이타성, 예술적 승화, 평화의 중심에는 조건 없는 사랑이 존재한다.


댓글 쓰기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