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7일 감사 3줄 노트
오늘 잘한 일
오늘도 변함없이 정갈한 하루가 시작된다. 집안을 정리하고 차분히 커피를 내리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오늘은 어떤 글을 쓸까?’ 매일 이 시간이 되면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 문득 10년 후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살아가는 내 모습을 떠올리며 글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창가로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드는 평화로운 오후, 여느 때처럼 집필 과제를 이어가던 중 고요를 깨는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자신을 여수 문화방송(MBC) 사회부 기자라고 밝힌 이는, 최근 베스트셀러 순위를 석권하며 주목받고 있는 나와의 인터뷰를 간곡히 요청해 왔다.
평소 세간의 관심보다는 집필실의 고요를 즐기기에 정중히 사양하려 했으나, “작가님의 문장이 우리 지역사회와 독자들에게 어떤 구원이 되었는지 꼭 직접 듣고 싶습니다”라는 기자의 진심 어린 호소에 결국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
인터뷰는 내 영혼이 깃든 서재에서 진행되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철학 서적들과 치열한 집필의 흔적인 원고 더미가 기분 좋은 종이 향을 내뿜고 있었다. 기자는 설레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작가님, 문학을 전공하지 않으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토록 정교하고 힘 있는 글을 쓰게 되셨나요?” 나는 잠시 서재 창밖의 풍경을 응시한 뒤 대답했다.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그저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책상에 앉아, 내 안의 언어가 세상에 어떻게 기여하고 어떤 파동을 일으킬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곧 우리의 삶이자 풍요가 된다는 확신이 저를 지속하게 만들었죠.”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기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내 철학에 깊이 공감했다.
짧은 만남이 아쉬웠던지 기자는 “오늘은 작가님의 철학을 맛보기로만 담아갑니다. 조만간 작가님의 집필 여정을 깊이 있게 다루는 특집 시리즈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습니다”라는 설레는 제안을 남기고 돌아갔다.
기자가 떠난 뒤 다시 정적에 잠긴 서재에서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10년 전, 이 모든 것을 꿈꾸며 첫 문장을 적었던 그날의 설렘이 지금 이 순간과 기분 좋게 공명하고 있었다.
오늘 나는 시대를 초월한 삶의 지혜와 철학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윤지원 작가의 <니체처럼 사랑하고 세네카처럼 현명하게>를 펼쳐 들었다. 그리고 “왜 지금 다시 철학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인생의 모든 해답은 철학에 있다.” 이 한 문장은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심리 서적이 넘쳐나는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강하게 두드린다.
우리는 왜 수천 년 전 철학자들의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여야 할까? 이 책은 그 답이 바로 ‘고민의 본질’에 있다고 말한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사회는 급변했지만, 인간이 마주하는 근원적인 질문과 고통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놀랍도록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돌아보며, 고대 철학자들이 마주했던 고민과 오늘날 우리가 겪는 고민의 공통점 및 차이점을 비교 분석해 보고 철학이 어떻게 현대적인 삶의 나침반이 될 수 있는지 탐구해 보고자 한다.
책이 전하는 핵심은 철학이 박물관에 갇힌 낡은 학문이 아니라, 지금 당장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생존 도구’라는 점이다.
저자는 불안, 관계, 사랑, 일, 죽음 등 현대인이 겪는 보편적 문제들을 니체, 세네카, 에피쿠로스, 쇼펜하우어 등 대철학자들의 사상과 연결하여 명쾌하게 풀어낸다.
첫째, 니체의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다.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관계에 소극적인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삶과 운명의 모든 순간을 온전히 긍정하고 뜨겁게 사랑할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둘째, 세네카의 스토아 철학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내 생각, 태도, 판단)과 통제할 수 없는 것(타인의 평가, 외부 사건)을 명확히 구분하라고 조언한다. 이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와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는 이들에게 내면의 평온을 찾는 이정표가 된다.
결국 우리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문제와 나 자신 사이에 건강한 거리를 확보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철학자들의 시선으로 나의 고민을 객관화할 때,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이성적인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위로이자 가르침이다.
수천 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고대 철학자들과 우리의 고민은 그 뿌리가 같다. 그들 역시 유한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고, 인간관계의 어려움에 고뇌했으며, 예측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불안해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며 성찰하는 삶을 강조했고, 플라톤은 이데아를 통해 영원한 가치를 추구했다. 죽음이라는 실존적 공포 앞에서 삶의 유한성을 직시하고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숙명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핵심 요소로 ‘우정(Philia)’을 꼽으며 진정한 관계를 탐구했고, 스토아 학파는 분노 같은 파괴적 감정을 이성으로 다스리는 법을 치열하게 고민했다.
SNS 속 피상적 관계에 지치고 직장과 가정에서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의 모습은 고대인들의 고뇌와 놀라울 정도로 겹쳐진다.
또한 에피쿠로스는 소박한 삶 속에서 고통이 없는 ‘아타락시아(Ataraxia, 마음의 평정)’ 상태를 진정한 행복으로 보았다. 이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공허함을 느끼며 ‘워라밸’과 ‘소확행’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현대인의 욕구와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다.
이처럼 사랑, 우정, 상실, 불안, 죽음 등 인간이 겪는 희노애락의 알맹이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민을 유발하는 환경과 양상은 과거와 명백히 다르다. 고대 철학자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문제들이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속도’와 ‘복잡성’이다. 과거가 공동체와 신, 운명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비교적 단순한 고민을 했다면, 현대는 개인화, 디지털화, 세계화 속에서 파편화된 고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마주한다.
세네카는 타인의 시선을 통제할 수 없다고 했지만, 24시간 나를 평가하고 비교하게 만드는 SNS 환경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현대의 고민은 훨씬 다층적이고 복잡하다.
그럼에도 철학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현대적 삶의 나침반이다. 고민의 형태는 복잡해졌을지라도 그 본질은 인간의 근원적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수천 년간 축적된 철학적 사유는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튼튼한 ‘생각의 틀’을 제공한다. 철학은 정답을 제시하는 매뉴얼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중심을 잡도록 돕는 나침반이다.
고대 철학자들과 현대인의 고민을 비교하는 과정은 철학이 얼마나 ‘지금, 여기’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깨닫게 해준다.
시대를 초월한 그들의 지혜를 빌려올 때, 우리는 비로소 오늘을 더 주체적이고 현명하게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오늘 아쉬운 일
감사는 이타성을 낳는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도우려는 마음, 즉 이타성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을 돌볼 겨를이 없고, 누군가를 돕는 것조차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로 치부되곤 하는 삭막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탓하기에 앞서 나부터 타인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키워가야 하지 않을까.
이타심을 증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감사’다.
감사를 자주 느끼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타적으로 행동하게 되며, 감사의 표현은 상대방의 친사회적 행동을 끌어낸다. 그러니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말자.
내일 개선해야 할 일
살아가면서 역경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모양과 강도는 다를지라도 누구나 저마다의 시련과 고통을 겪는다.
두려움, 불안, 좌절과 같은 역경을 딛고 다시 삶을 일구어내는 능력을 심리학에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부른다.
마치 바닥에 부딪힌 공이 다시 튀어 오르는 것처럼 원래 상태로 복원되는 힘이다. 뜀틀을 넘을 때 구름판을 힘껏 밟아야 뛰어넘을 수 있듯, 회복탄력성은 삶의 시련을 넘어서게 하는 든든한 구름판 역할을 한다.
회복탄력성의 근원은 바로 삶에 대한 ‘희망’과 ‘긍정성’이다. 그리고 그 긍정성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동력은 ‘감사 탄력성’이다.
감사 탄력성이 있을 때 우리는 역경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희망을 향해 뛰어오를 수 있다.
이 깨달음을 가슴에 새기며, 어떠한 실패 앞에서도 움츠려 들지 않고 가슴을 활짝 편 채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