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3일 수요일 감사3줄 노트

  1. 오늘 잘한 일은.

2025년 7월 23일 수요일입니다. 달력상으로는 가장 덥다는 절기인 ‘대서’ 바로 다음 날입니다.

1년 중 가장 뜨거웠던 오늘의 날씨는 한마디로 숨이 턱 막히는 하루였습니다.

장마가 잠시 숨을 고르며 물러간 자리에 뜨거운 고기압이 들어앉았습니다. 하늘은 더없이 파랗지만 공기는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어, 창문을 열자마자 눅눅한 열기가 느껴집니다. 매미들은 “오늘 진짜 덥다!”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합창을 하고, 길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한 손에는 손선풍기를, 다른 한 손에는 얼음 가득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방패처럼 들고 다닙니다. 지하철이나ㄱ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느껴지는 서늘한 냉기가 마치 구원처럼 다가오는 날입니다.

이번 여름은 유독 길고 진하게 느껴지며, 7월 23일은 그 긴 여름의 딱 중간 지점에서 가장 지쳐있으면서도, 동시에 여름 특유의 생명력을 가장 많이 들이마셨던 날입니다.

끈적이는 피부와 땀방울이 짜증나다가도, 편의점 파라솔 아래서 먹는 쭈쭈바 하나에 금방 행복해지는 순간, 어쩌면 우리는 그 뜨거운 공기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여름’이라는 계절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습니다.

혹시 오늘 너무 더워서 빨리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진 않으셨나요? 오늘의 이 뜨거웠던 열기조차 지나고 나면 그리운 여름의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오늘 할 일 중에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신청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번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고물가와 경기 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의 부담을 덜고, 위축된 소비를 회복하여 내수 경기를 활성화하려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편성되었습니다. 정부는 이를 위해 30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습니다. 우리 집은 3인 가구라 약 45만 원 정도로 예상되는데, 작지만 지역 경제 활성화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롤런드 앨런”의 “쓰는 인간”에 대해 요약해보고자 한다.

쓰는 인간은 노트를 기록도구가 아닌 인류가 사고하고 배우고 창조하는 데 핵심적인 사고확장 도구로 바라봅니다. 중세 상인의 회계장부부터 과학자, 작가의 연구노트, 그리고 현대의 불렛저널 까지 폭넓은 사례를 통해 손으로 종이에 쓰는 행위가 우리의 삶의 창의성, 생산성, 정신건강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쓰는 존재다 — “쓰는 것은 존재하는 방식이다”

인간은 단지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 ‘쓰는 존재’입니다. 말은 흩어지지만 글은 남고, 말은 순간을 붙잡지만 글은 시간을 뛰어넘습니다. 이 차이가 바로 글이 인간 존재의 핵심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기록하는 존재’로 살아갑니다. 어린 시절의 그림일기, 학창 시절의 편지, 마음에 품은 시 한 줄까지 그 모든 것이 한 인간이 존재했었다는 증표입니다. 글은 우리 존재의 흔적이이자 자기 인식의 도구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입니다. 쓰는 행위는 자기를 정의하는 실천이며, 내면을 형상화하는 과정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쓰면서 살아갑니다. 침묵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글 속에서 다시 자신을 구성해 나갑니다.

“내가 쓰는 문장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증명한다.”

이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단 하나입니다. 우리는 쓰는 존재이며, 쓰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존재함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단 하나입니다. 우리는 쓰는 존재이며, 쓰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존재함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삶의 방식이다 — “어떻게 쓰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

글은 삶에서 오고, 삶은 글로 향한다. 글을 잘 쓰는 법을 찾기 이전에 먼저 묻자. “어떻게 살고 있는가?”

삶이 깊은 자만이 깊은 문장을 쓸 수 있다. 삶이 진실한 자만이 진실한 문장을 쓸 수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고, 스타일이 아니라 방식이다.

많은 사람들은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단어를 고르고 수사법을 익힌다. 그러나 진짜 좋은 문장은 고백처럼 다가온다. 그것은 오히려 정직하고 담백한 삶에서 우러나온다. 글은 삶의 거울이며, 글을 고치는 일은 삶을 고치는 일이다.

작가는 문장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 ‘기록할 줄 아는 사람’이다. 삶 전체가 글이 되는 사람, 일상의 고요한 틈에서 문장을 발견하는 사람, 그런 이가 진짜 ‘쓰는 인간’이다.

“훌륭한 문장은 훌륭한 생에서 온다.”

이 장은 자기계발서의 방향성과도 밀접하다. 삶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부의 흐름을 글로 만들기 전에, 그것을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텍스트는 육체로부터 — “글은 머리가 아닌 몸에서 태어난다”

글쓰기는 이성의 작용이라 여겨지지만, 사실 그 시작은 몸입니다. 손끝의 떨림, 가슴의 두근거림, 배에서 올라오는 불안처럼 우리는 느낌을 따라 글을 씁니다. 글은 살아 있는 감각의 조각들이며, 몸에서 나와 텍스트가 됩니다.

이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글쓰기란 단지 ‘앎’의 전달이 아니라 ‘느낌’의 기록이라는 점입니다. 지식은 머리에 쌓이지만, 진짜 문장은 몸에서 나옵니다. 지적인 글보다 감각적인 글이 오래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 기쁨, 슬픔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기억합니다. 그 감각이 글에 스며들 때, 독자는 ‘공감’이라는 가장 깊은 방식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작가로서 ‘몸’의 감각을 잊지 말자. 잠재의식도, 양자적 직관도 결국은 ‘느껴지는 것’을 글로 번역하는 일이다.


고독과 침묵의 힘 — “글은 침묵 속에서 태어난다”

진짜 글은 군중 속에서가 아니라 고요한 혼자만의 방에서 태어난다. 침묵과 고독을 견디는 힘이 없이는, 깊은 문장 하나 건져 올릴 수 없다.

사람은 외로움을 회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외로움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외로움과 함께 숨 쉬고 그 안에 머문다. 왜냐하면 가장 깊은 문장은 고요 속에서 움트기 때문이다. 바깥의 소음이 사라져야 내면의 진실한 소리가 들린다.

침묵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이다. 외부와의 단절을 통해 자기 내면과 깊이 연결되는 상태. 이 침묵의 공간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왜 쓰는가?”, “이 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고독은 작가의 자궁이다. 진실은 침묵 속에서 태어난다.”

자기계발서와 연결해 본다면, 침묵과 고독의 공간은 잠재의식과 연결되는 문입니다. 마음의 파동이 조용해질 때 우리는 진정한 부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고요한 곳에서 진짜 변화가 시작됩니다.


쓰기와 기억 — “글은 사라지는 것을 붙잡는 도구다”

기억은 흐릿해지지만 글은 그것을 붙잡아 둡니다. 시간은 모든 것을 지우려 하지만, 글쓰기는 그 지우려는 힘에 저항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글을 쓰고, 글을 통해 기억합니다. 잊혀 간 아버지의 목소리, 스쳐 간 첫사랑의 눈빛, 오래전 버스 창밖 풍경은 글 속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쓰는 인간은 ‘기억의 복원자’이자 ‘감정의 기록자’입니다.

특히 상실과 그리움은 강력한 문장의 에너지가 된다. 모든 위대한 글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다. 지나간 것에 대해 쓰는 것은, 현재를 더 생생히 살아내기 위한 저항이기도 하다.

“글은 시간에 대항하는 유일한 언어다.”

돈도, 성공도, 사랑도 결국 인간의 ‘기억’과 연결된다. 과거의 상처, 실패, 꿈. 그것들을 ‘의식화’하지 못하면 부의 흐름은 잠긴 채로 남는다. 글쓰기는 과거를 의식 위로 끌어올려, 다시 ‘창조’하는 작업이다.


쓰기의 윤리 — “글에는 책임이 따른다”

글쓰기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입니다. 한 문장이 사람을 살릴 수도,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말과 글에는 힘이 있고, 그 힘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그래서 진짜 작가는 ‘정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기 삶에 정직하고 자기 표현에 책임지는 사람, 글은 그 사람의 의식 수준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쓰는 인간은 ‘자기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며, 그렇기에 가짜를 쓸 수 없다. 꾸며내는 말보다 살아 있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 어떤 지식보다 진실한 체험, 어떤 기술보다 깊은 통찰이 더 큰 힘을 가진다.

“글쓰기 윤리는, 진실에 가까워지려는 노력 그 자체다.”

자기 계발서가 진정한 울림을 가지려면, 이 ‘윤리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부의 흐름을 전하려면, 먼저 자신이 정직한 에너지로 살아가야 하며,  윤리 없는 자기계발은 결국 신뢰를 잃는다.


글쓰기의 자유 — “쓰는 일은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글쓰기는 해방이다. 남들이 정해준 언어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언어로 세계를 다시 쓰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본질이다.

사회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부모, 교육, 뉴스, 기준, 시스템. 우리는 수많은 외부의 목소리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잃고 산다. 그런데 글을 쓰면, 우리는 묻기 시작한다. 

“나는 정말 그렇게 살고 싶은가?” 이 질문은 자유로 가는 길의 시작이다. 쓰는 인간은, 자기 삶의 서사를 스스로 설계하려는 자다. 남이 짜준 각본을 따르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자기 언어로 말하려는 사람. 그래서 글은 자유를 향한 저항이자 선언이다.

“글쓰기는 스스로 운명의 저자가 되겠다는 선언이다.”

부의 창조 또한 ‘자기 인생을 재설계하는 자유’에서 출발합니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만의 비전을 설계하고, 그 그림을 언어로 구체화할 때 비로소 잠재의식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부는 ‘내면의 자유’로부터 옵니다.


《쓰는 인간》은 단순히 글쓰기에 대한 책이 아니라,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어떻게 해방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쓰는 인간’은 노트를 단순한 기록 도구가 아닌, 인류가 사고하고 배우고 창조하는 데 핵심적인 ‘사고 확장 도구’로 바라봅니다. 중세 상인의 회계장부부터 과학자와 작가의 연구 노트, 그리고 현대의 불렛 저널까지 폭넓은 사례를 통해, 손으로 종이에 쓰는 행위가 우리 삶의 창의성, 생산성, 정신 건강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위 내용은 내 책에서 잠재의식, 양자역학, 부의 흐름을 다룰 때 매우 강력한 철학적 토대가 되어 줄 것입니다.


  1. 오늘 아쉬운 일은.

인간의 감정도 쉽게 동요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울한 사람이 모여있는 방에 들어가면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해지는 것을 누구나 경험해 봤을 것이다. 또한 삶의 의욕이 없는 사람들과 잠깐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반대로 긍정적이고 행복한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행복감에 빠져든다. 이와 같은 기분들도 동조현상으로 설명한다.

이처럼 세상 모든 것은 동조를 일으킵니다. 당신의 소망을 향해 한껏 발산하는 ‘감사 에너지’라는 강력한 파동은 그와 동조하는 파동을 끌어당겨 실제로 우리 삶에 구현해 내는 마법과도 같은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더 큰 감사를 불러오는 선순환을 만들어 냅니다. 감사하면 할수록 감사할 마음이 점점 커지고, 감사할 기회 또한 점차 많아지게 됩니다.

“오늘 아쉬운 일은 이 글로 대신한다.”


  1. 내일 개선해야 할 일은.

셜츠 C. 넬슨과 지니 르메어 칼라바의 주장처럼, 잘 가꾸어진 감사는 우주에 신비한 리듬을 발산시키고, 그 리듬을 전달받은 여러 파동은 그것과 잘 어울리는 특별한 소리를 내기 위해 모여듭니다. 이로써 당신이 간절히 원하는 일들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이 신비한 현상을 베스트셀러 《시크릿》에 나온 ‘끌어당김’이라는 표현으로 부릅니다. “호의는 호의를 부른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주는 대로 받는다”라는 속담들은 모두 과학적인 사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분위기의 에너지를 발산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에너지가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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